국정연설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워싱턴 EPA=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워싱턴=연합뉴스) 김경희 특파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첫번째 임기 마지막 국정 연설에서 11월 대선 대결이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고령논란을 의식한듯 바이든 대통령은 평소에 볼 수 없었던 거침없이 강한 어조로 1·6 의회 폭동을 비롯해 민주주의, 낙태권, 부자 증세를 포함한 경제 정책, 국경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정책 의제를 아우르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고 자신의 정책 비전을 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내내 '트럼프' 이름은 꺼내지 않았지만 '나의 전임자'로 지칭하며 마치 선거 유세를 벌이듯 어느 때보다 강력한 톤으로 성토했다.
81세로 최고령 대통령인 그는 고령 논란에 대해선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1시간 8분간 진행된 연설 내내 시종일관 강한 목소리로 일관한 그는 연설 말미에는 아예 작심하고 나이 문제를 거론하며,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이라며 불식에 나섰다.
워싱턴포스트(WP)는 "분노의(fiery) 바이든이 공화당을 겨누고 재선 도전을 선언했다"고 했고, CNN은 "바이든 대통령이 강력하고 종종 애드리브를 곁들인 연설을 했으며, 트럼프를 겨냥한 가장 정치적인 국정 연설이었다"고 소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워싱턴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 "전례없는 민주주의 위기"…1·6 사태 소환하며 트럼프 겨냥
'4년 더'를 외치는 민주당 의원들의 환호 속에 연단에 오른 바이든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국정 연설을 거론하며 입을 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히틀러의 시대였던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지금은 정상적인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자유와 민주주의 위기였다"며 "나는 똑같은 연설을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섰다. 지금 역시도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시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 같은 위기 사례로 거론하며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중단할 수 없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지원한다면 푸틴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목, "내 전임 전 공화당 대통령은 푸틴에게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며 "나는 이를 통탄스럽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위험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안보 예산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며 "역사가 지켜보고 있다"고 역설한 뒤 "푸틴에 대한 내 메시지는 간단하다. 전임자는 푸틴에 조아렸지만 우리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며,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곧바로 1·6 의회 폭동을 또 다른 역사로 거론, "1·6 사태와 2020년 대선 사기 주장은 남북 전쟁 이후 우리 민주주의에 최대 위협이었다"며 "그들은 실패했고, 미국은 강하게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위협은 남아있으며, 민주주의는 지켜져야 한다"며 "내 전임과 여러분 일부는 1·6 사태의 진실을 묻으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비시켰다.
또 "진실은 단순하다. 당신이 승리했을 때에만 나라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치명적 약점 가운데 하나인 1·6 의회난입 사태를 정조준했다.
낙태 문제를 놓고도 "내 전임자는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은 뒤집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낙태권 폐기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이어 "내 전임은 전국적으로 낙태 금지법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며 "도대체 또 어떤 자유를 빼앗아 가겠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하며 비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낙태권이 투표에 달렸다는 것을 여성들은 알고 있다"며 "그들은 2022년과 2023년 선거에서 이겼으며, 그들은 2024년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부자 증세·주택대출 보조금 등 사실상 대선 공약 제시…국경 문제엔 '이민 정신' 부각
대선을 앞두고 지지율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와 국경 안보 등 대표적인 정책적 비판 지점들에 있어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 날을 세우며 적극적으로 방어막을 쳤다.
또 집권 동안 자신이 이룬 경제적 성과를 과시했고, 대선공약과 같은 정책을 약속하며 집권 2기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위기의 경제를 이어받았고, 현재 우리 경제는 세계 최고"라면서 "50년 가운데 가장 낮은 실업률을 기록했고, 3년간 1천500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했다. 인플레이션은 9%에서 3%로 떨어졌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 전임을 비롯해 역대 정권은 '바이 아메리카'에 실패했다. 더 이상은 아니다"라면서 인프라법을 비롯해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을 통해 미국에 투자가 몰리고 있으며 미국의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다고 성과를 부각했다.
선거를 염두에 둔 듯 정책 과제는 대부분 국내용에 집중했다.
인슐린 가격 월 35달러 상한을 포함한 메디케이 확대, 향후 2년간 주택담보대출 월 400불 보조금 지급, 모든 아동에 대한 유치원 교육 제공, 학자금 프로그램 강화, 신용카드 연체비 32달러에서 8달러 수준으로 인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세금 문제와 관련해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감세 정책에 초점을 맞춰 바이든 대통령은 '부자 증세'를 내세웠다.
그는 "대기업과 부유층이 공정하게 세금을 지불해 연방 재정 적자를 3조 달러 줄이는 것이 나의 목표"라며 "지난 정부는 부자와 대기업에 대한 2조 규모 감세로 역대 어느 정권보다 국가 부채를 늘렸다"고 비난했다.
그는 "내 계획에 따르면 소득 40만달러 미만은 한 푼의 세금도 더 내지 않는다"며 법인세의 최저한세 21% 수준 인상 및 백만장자의 소득세율 25% 도입 등을 주창했다.
국경 및 이민 문제를 놓고도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에서 초당적으로 합의한 국경 예산이 좌초한 배경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목하며 "내 전임은 그것이 정치적 승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이 문제는 그러나 그와 나의 문제가 아니다"며 "만약 내 전임이 연설을 보고 있다면, 나의 법안 처리 노력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함께하지 않을 것도 있다"며 "나는 이민자가 우리 나라의 피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발언으로 이민자를 악마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족을 갈라놓지도 않을 것이며, 신념 때문에 미국을 찾는 사람들을 쫓아내지도 않을 것"이라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민 정책을 규탄하며 차별화를 다짐했다.
그는 "우리는 자유를 찾아, 무력에 쫓겨, 기아에 굶주려 온 모든 사람의 안식처"라며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왔고, 그것이 미국"이라며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의 정신을 되새겼다.
이밖에 바이든 대통령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문제에 있어서도 그들의 편에 선다는 점을 확인하고, 총기규제에 있어서도 강력한 목소리를 냈다.
그는 "내 전임은 재임 당시 전미총기협회(NRA)에 '총기 문제와 관련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자랑스럽다'고 말했고, 총기난사 사태 이후에는 '그냥 잊어버리자'고 했다"며 "우리는 NRA를 처단해야 한다. 총기 규제를 촉구한다"고도 목소리를 높였다.
◇ 고령 논란 정면 돌파…"나이가 아닌 생각이 낡은 것이 문제"
이번 연설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재선 도전에 가장 큰 발목을 잡는 고령 논란을 불식하는 데에도 주력했다.
이전 연설과 확연히 다르게 강력하게 연설을 이어간 그는 사이사이 특유의 농담과 계산된 애드리브를 섞어 가며 자신의 건장함을 과시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 지구를 혼동하는 등 잦은 말실수로 구설에 올랐지만, 연설 와중에는 그 같은 실수는 발생하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마지막에서는 아예 자신의 나이에 대한 우려를 직접적으로 꺼내놓았다.
그는 "내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꽤 오래 살았다"며 "내 나이가 되면 더 명확해지는 것들이 있다"며 연륜을 통해 민주주의와 정직함, 평등, 존엄, 존중의 가치를 한층 깨닫게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 나이대의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를 본다"며 "이것은 원한과 복수, 보복에 대한 미국식 이야기"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을 또다시 겨냥했다.
그는 29세의 나이로 상원의원에 당선된 이후 정치 이력을 나열하며 "나는 그간 너무 젊다, 너무 늙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살았다"며 "젊어서나 늙어서나 나는 무엇이 지속되는지 알고 있다"며 그것은 미국의 이념이라고 지목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긍정적"이라며 "우리 나라가 직면한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나이 들었느냐가 아니라, 우리 생각이 얼마나 낡았느냐"라고 지적했다.
그는 "나는 민주주의를 지키고, 자유를 수호하고, 중도층의 공정한 삶에 미국의 미래를 본다"며 "나는 미국과 미국인을 믿는다. 여러분이 우리 미래에 긍정적인 바로 그 이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kyunghee@yna.co.kr
(끝)
ⓒ 뉴스투데이 파나마(https://www.newstodaypanam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